흔들리는 일본의 '안전신화'
일본이 자랑하는 ‘안전신화’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5월 12일 일본스포츠진흥센터가 운영하는 축구복권 시스템에서 통신 불량이 발생해 일부 판매가 중지됐다. 같은 달 23일에는 NTT동서지역회사의 인터넷전화 ‘히카리전화’에서 동 서간 통화 불능 사태가 일어난 데 이어 동해여객철도의 신칸센 인터넷 예약시스템도 장애로 이용이 일시 정지됐다.
사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7일에는 일본 제2의 항공사 전일본공수(全日本空輸, ANA)의 국내여객용 컴퓨터시스템 장애로 항공기 114편이 결항돼 4만 명 이상의 승객이 불편을 겪었다. 장애의 원인은 사고 발생 17일이 지나서야 통신기기 메모리의 고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ANA의 시스템 장애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2년 5월 컴퓨터시스템 점검 중 전원이 꺼져 전국 공항의 항공권 발행이 중단됐고, 다음해 3월에는 네트워크시스템의 소프트웨어 변경 작업 중 설계 실수로 시스템이 멈췄다. 이 사고로 163편이 결항돼 3만 2천800명의 발이 묶이는 바람에 ANA는 약 6억 엔을 환불해 주어야 했다. 올해 3월 13일에는 60명이 탑승한 여객기가 앞바퀴 고장으로 비상 동체 착륙하는 장면이 일본 전역에 TV로 생중계되는 등 ANA의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11월 1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도 시스템 장애가 일어나 오전 내내 거래가 전면 중단됐다. 세계 주요 거래소에서 전면적으로 거래가 정지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로부터 1개월여 뒤 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도쿄증권거래소에 신규 상장된 한 회사의 주식을 “1주당 61만 엔에 매도해 달라”고 의뢰받은 미즈호증권의 직원이 실수로 “61만 주를 주당 1엔에 판다”고 컴퓨터 주문 단말기에 입력해 버린 것. 매도가 1엔은 하한가를 훨씬 밑도는 것으로 컴퓨터 단말기가 경고음을 내보냈지만 시스템 결함으로 매도 절차가 그대로 진행돼 버렸다.
앞선 일련의 사태들은 2005년 4월 효고현 열차 탈선사고(107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부상한 1963년 이후 최악의 철도사고)처럼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고는 아니었지만 사소한 대목까지도 매뉴얼에 입각해 꼼꼼히 챙기는 일본의 사회적 관행에 역행하는 실수들이 연발되면서 ‘안전대국 일본’을 흔들고 있다.
일본의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잇따른 정보시스템 장애의 발생 원인으로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심각한 부족과 투자 미흡을 꼽고 있다. 최근 자동차, 산업기계, 디지털가전 등의 작동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일본 내에서 관련 교육을 받고 배출되는 인력은 연간 1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철야근무 등 근로환경이 열악해 이직이 잦은 데다 신구 시스템을 총괄해 개발 및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가 적고 학생들도 IT를 3D 분야로 여겨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한국, 중국, 인도 등의 IT 인력들이 채우고 있다. IT 조사기관인 가트너저팬이 지난 5월 발표한 IT 투자에 대한 적극성 조사에서 일본은 조사 대상 16개국 중 최하위였다.
일본 산업계를 대표하는 경단련(經團連)은 2005년 6월 IT 인력 육성 면에서 한국과 중국에 뒤지고 있어 정부 및 산학이 연계해 대학원급 거점모델을 설치, 시급히 고급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회원사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 IT 기업의 대졸 신입직원 중 즉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비율이 겨우 10%에 불과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거품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 동안 IT 분야의 투자와 전문인력 양성을 소홀히 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일본.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우리 경제가 놓치고 있는 부문을 찾아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Posted by gedw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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